개발자가 되고싶었던 비전공자의 2년 간의 회고

Dev-Yuns
11 min readJan 1, 2022

오늘 아침 7시 50분쯤에 새 해가 떴다. 30대로 접어드는 첫해라 한 번쯤 구경 나갈까 싶다가도 아무래도 집에서 조용히 해를 맞이하는 게 좋겠다 싶었다.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이상하게 일찍 눈이 떠져서 자연스레 창가로 향했다. 창가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 보니 어느새 날이 밝아온다. 해가 왜 안 보이지 싶을때 쯤 깨달은 사실. 우리 집 창가는 서향이구나..

집에서 못찍어서 친구가 보내준 새해 사진으로 대체;;

나이는 그저 숫자에 불과하다고들 하지만 괜스레 지난 20대를 뒤돌아보게 된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 내 인생에 가장 큰 변곡점을 꼽자면 아마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접하게 된 개발이라는 일이 점점 더 재밌어지고 잘하고 싶은 욕심이 계속 커지고 있다. 일이 즐겁다는 게 정말 행복하다는 것을 주위를 둘러보면서 조금 깨닫고 있다.

2020년 1월, 아무것도 모르고 생활코딩을 시작으로 처음 개발에 발을 들인지 어느새 2년이 되었다. 생각보다 더 빠르게 지나가는 시간이 놀라우면서도 이제는 회고를 하지 않으면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된다는 위기감을 느끼면서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았다.

개발자가 된 계기

대학시절 세계여행을 하면서 소위 노마드 코딩을 하는 외국인 친구들을 만날 기회가 꽤 있었다. 그때마다 막연히 개발이 어떤 것인가 궁금하기도 하고 개발자에 대한 호기심이 많이 들었었다. 인터넷으로 프로그래밍에 대해 알아보기도 했다. 여행 중에 만난 한국 사람들 중에서 IT업계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있었는데, 괜스레 너는 개발자가 어울릴 것 같다는 말을 듣기도 했었다. 그때는 그냥 그렇구나하고 웃어넘겼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귀국 후에 마지막 학기로 진행했던 현장실습 프로그램에서 인연을 맺은 스타트업에서 개발 직군으로 전환을 제의받았다(그때는 마케팅 직무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개발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황이라 약간 어리둥절 했지만 감사하게도 개발자분들과 대표님이 의지만 있다면 성향과 적성에 맞을 것 같다고 적극 지지해주셨다.

고민은 그리 길지 않았다. 인생에 다이나믹한 변화를 주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이런 제의가 즐겁게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개발자가 되기 위한 여정에 올라탔다. 결정을 하고나니 행동은 아주 빠르게 이어졌다. 일주일도 안되서 자취방을 정리했다. 부산과 서울에 모두 사무실이 있어서 대표님이 부산 일정을 마무리하고 올라갈 때 같이 올라가기로 했다. 밤 12시에 출발해서 새벽 4시 즈음 도착했고 그렇게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

돌이켜보면 개발을 시작하게된 계기가 꽤 특이한 편인 것 같다(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비전공생이라면 흔히들 접하게 되는 국비학원이나 다른 사설 교육 과정없이 회사에서 소정의 생활비와 숙식을 제공 받으면서 실무를 진행하고 있는 개발자분들의 도움 아래서 개발공부를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하게 된 개발은 생각보다 더 재미있었다.

소중했던 서울에서의 첫 보금자리..

개발의 시작과 좌절

도착한 다음날 부터 개발 관련 여러 자료들을 받으면서 꽤 빡빡한 일정이 시작되었다. 아무래도 지원을 받아서 개발을 시작하게 된 만큼 어느정도 부담감을 가지고 시작해서 그런지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했다. 회사의 자원이 한정된 상황에서 최대한 빨리 실무에 투입될 능력을 갖춰야할 상황이었기 때문에 빠르게 학습을 진행해나갔다.

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급격히 안좋아지게 되면서 더 이상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되었고 팀을 나가게 되었다. 내 의지로는 상관없이 흘러가게 된 상황이 아쉬웠고 나는 서울에 온 지 3개월 만에 백수 아닌 백수가 되었다.

짧은 기간 이었지만 개발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확신을 가지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서점에가서 무작정 책을 사서 하나씩 읽기도 하고, 학원을 고민해보기도 하면서 혼자서 개발 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 과감하게 맥북 프로 16인치를 지르게 되었다.

사실 안사도 되는데 굳이 허세롭게 구입한 맥북 프로 16인치.. 이후 1년도 안되서 m1 맥북이 나와버렸다..

나름대로 치열하게 커리어 고민도 해보고 공부하고 하는 나날을 보내고 있을 무렵, 지난 회사에서 사수 역할을 해주셨던 성암님께 전화가 왔다. 새롭게 팀을 모집하고 있는 곳이 있는데 추천해주신다는 것이었다. 아직 까마득한 상황에서 실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지만 늘 그래왔듯 우선은 부딪혀보자는 게 내 결론이었다. 그렇게 두부랩효찬님을 만나게 되었다.

당시 두부랩에서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위해 팀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나는 팀 모집을 막 시작할 무렵에 지원하게 되었다. 면접과 과제 전형 및 간단한 알고리즘 테스트를 거친 후에 합류하게 되었다. 사실 테스트가 굉장히 초보적인 수준이어서 기회를 주는 측면에서 채용해주셨다고 생각한다.

당시 과제로 주셨던 내용을 포스팅 했었는데 현재까지 누적 조회 수가 2.1K 정도 된다. 이때 실용적으로 참고할 수 있는 포스팅이 수요가 높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 이후로는 단순 개념에 관한 글보다는 코드와 함께 최대한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생각보다 빠르게 다시 실무 환경으로 돌아올 수 있었지만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항상 좋은 일만 있을 수는 없었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미숙해서 어떤 것이 올바른 행동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업무적인 실수 외에도 사내 정치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부끄러운 실수들을 많이 저질렀다. 그런 실수들 때문일까. 큰 문제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팀은 약 4개월 만에 해체 수순을 밟게 되었고 나는 다시 백수가 되었다.

개인적 반성과 교훈

일련의 사건들을 겪은 이후 많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왜 나에게 계속 이런 시련이 찾아오는 걸까하는 원망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인과 관계의 시작점에는 언제나 미숙한 나 자신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첫 회사에서 지원을 해주었음에도 정말 후회 없을 정도로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 다시 찾아온 기회에서도 안일한 생각과 태도로 업무에 임했던 것 등이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왔다. 스스로를 제대로 판단할 수 있는 메타인지, 올바른 행동과 정확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 등이 얼마나 중요한지 몸으로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련의 사건을 겪고 난 후에도 효찬님께서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셔서 2021년이 마무리 된 지금까지 함께 일을 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늘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2021년 : 진정한 개발자의 길을 향해

2020년이 여러 이벤트를 겪으면서 내면적으로 성장하고 개발이라는 일에 확신을 가지게 되는 한해 였다면 2021년은 개발자로서 필요한 것들을 갖춰나가는 한해였다고 생각한다. 연초가 지나고 재정비를 한 두부랩에 다시 합류 한 이후 연말까지 일을 해오면서 개발자로서 내가 해온 것들 혹은 얻은 것들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개발

  • 개발에 입문한 초창기 부터 타입스크립트를 사용해왔는데, 이제야 조금씩 눈에 들어온다. 내가 원하는 타입을 변형해서 적절하게 사용하고, 타입 범위를 필요한 만큼 조절하는 것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 타입 파일이 마치 다른 언어의 함수 시그니처 등을 정의 해놓은 헤더 파일과 유사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타입에 대한 이해도가 조금 높아지면서 이제는 간단한 라이브러리의 함수 정도는 문서를 보기보다 타입 파일을 보고 해당 함수의 쓰임새를 예상할 수 있게 되었다.
  • 한해 동안 정말 다양한 기술에 발을 담가보았다. react nativerelay를 제일 많이 다뤘지만 부수적으로 C 언어를 공부 했고 블록체인을 알아보면서 solidite도 약간 사용해봤다. prisma, nestjs 등으로 GrahpQL Server를 구축해보았다. svelteurql을 통해 웹 어드민 페이지를 만들기도 했다. 아직 한군데에 제대로 집중할 곳을 찾지 못해 중구난방의 느낌이 있지만 상관없어 보이는 부분에서 얻은 것들이 다른 곳에서 색다르게 다가올 때가 있다.
  • 사용해보지 않은 새로운 기술이라도 별 거리낌 없이 우선 시도해보는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된 것 같다. 예전에는 뭐하나 한다고 하면 주로 문서부터 정독 하느라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최근에는 우선 설치부터 하고 하나씩 프로젝트에 적용해 나가면서 익히는 Bottom-up 방식의 접근법에 익숙해지고 있다.
  • 이제 어떻게든 구현은 해내는데 성능을 높이거나 개선하기에는 아직 기본기가 많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효율적인 시간 분배를 위해 회사와 같은 방향성을 가지면서 어떻게 기본기를 쌓아나갈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한 것 같다.

학습

  • 책과 강의에 대한 욕심을 어느정도 내려놓았다. 상대적으로 늦은 나이에 시작했다는 생각에서 오는 조급함을 다 소화하지도 못할 책 구매와 강의 구매로 충족시키다보니 어느 것도 채워지지 않았다. 사실 책 사는 것 자체에서 오는 만족감도 많은 편이라 여전히 책을 꽤 사기는 하지만 그래도 예전처럼 급한 마음보다는 필요한 것부터 차근차근 익혀나고 있다.
  • 다른 개발자 분들을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배우는 점이 많다. 혼자 갖혀있는 것보다 소통 하면서 서로 윈윈할 수 있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든다. 코로나 사태가 정리되면 좀 더 적극적으로 대외활동에 나서보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 학습을 통해 띄엄띄엄 얻게된 지식들을 연결하기 위해 좀 더 실용적인 포스팅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단순한 지식의 나열이 아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하다보니 오히려 얻게된 내용을 소화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는 것 같다.

태도

  • 2020년에 느낀 자기 반성이 아직 머리로만 깨닫고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메타인지를 키우고 정확하게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올해도 계속되는 것 같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최대한 상호간의 정보의 오차를 줄이기 위해 쓸데없는 자존심을 내려놓고 계속 소통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노력만 하는게 아니라 스스로 반성의 시간도 필요하다..

공자도 70세가 되어서야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도리에 어긋나는 법이 없었다고 하니 아직 갈길이 멀기만 하다. 마음가는대로 행동해도 커뮤니케이션에 문제가 없는 사람이 되고 싶다.

블로그

  • 업무나 공부 중에 얻은 지식은 최대한 활용가능하게 포스팅하려고 노력했다. 많지는 않지만 한달에 1개 이상 작성하려고 노력했고, 조회수도 꽤 나온 것 같다. 다만 한창 배울 것이 많은 주니어가 포스팅 할 것이 한달에 1개 밖에 안된다는 것은 놓치고 있는 것이 상당히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최소 일주일에 1개는 포스팅할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이다.

대외활동

  • react-native-seoul 커뮤니티에서 진행한 wehack이라는 오픈소스 해커톤에 참여했다. 의욕과 욕심을 가지고 참여했지만 다른 일에 치여서 생각보다 참여빈도가 떨어진다. 결과적으로 수상은 했지만 다른 사람들의 참여빈도가 더 떨어져서 상대적으로 얻은 결과이다. 스스로 채찍질이 좀 더 필요한 부분.
  • OSS에서 주최하는 open-source 개발자 대회에 팀으로 참여했다. 이 대회는 진짜 참여에 의의를 둔 것이라 광탈 했다. 게다가 그 와중에 내 기여도가 제일 떨어진다는 점이 더욱 부끄럽다. 돌아오는 해에는 좀 더 심기일전 해서 도전해보려 한다.

업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업무에 참여한 일들을 큰 카테고리별로 정리해보았다.

  • Web landing page 작업
  • prisma를 활용해 Database migration script 작성
  • Expo를 사용하여 Ios, andoroid, Web에 대응할 수 있는 서비스 화면 구현
  • Expo 서비스 배포 이후 장애 대응 및 Bug fix
  • GraphQL 명세를 참조하여 relay 환경에서 Multi file upload 구현
  • Svelte를 사용하여 Web admin 구현
  • Svelte및 supabase를 사용하여 프로젝트에 적용할 보일러플레이트 작성

Next step…

최근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여러 개발자분들을 보면 자신만의 브랜드를 잘 만들어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나는 아직 부족하고 준비가 안 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자꾸 주저하게 된다. 학습에는 끝이 없는데 언제 준비가 되었다고 느낄까! 사실 준비가 됐다고 느끼면 그때는 이미 자만하고 있는 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니까 핑계 그만 대고 새해에는 좀 더 적극성을 가지고 포스팅도 늘리고 나라는 브랜드가 가질 방향성도 잡아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쭉 회고를 해오면서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지만 아직까지 마음 한구석에 드는 불안감과 고민은 개발을 시작한지 2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러저리 떠도느라 서류 상 제대로된 커리어가 없다는 점이다. 나만큼 이상한 이력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도 드물 것 같다. 3~4개월마다 이동을 반복하니..실력과 활동으로 증명하면 된다지만 마음 한구석의 찜찜함은 아직 덜어지지가 않는다. 아직 수련이 부족해서 그런 것 같다..

--

--